김시진은 KBO 초창기의 상징적 에이스로, 원년 세대가 구축한 ‘한국 프로야구의 문법’을 실전에서 증명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삼성 라이온즈를 비롯한 여러 무대에서 꾸준함과 적응력, 그리고 빅게임에서의 집중력을 동시에 보여 주며 ‘40인 레전드’의 이름값을 완성했다. 본 글은 김시진의 통산 기록을 누적·비율·상황 지표로 나누어 정리하고, 동시대 맥락과 비교해 그의 가치를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원년 야구스타의 통산 기록 총정리: 누적·비율·상황지표로 본 가치
김시진의 커리어는 KBO 원년기에 형성된 경기 환경을 온몸으로 통과해 온 누적의 기록이다. 그 시대의 선발투수는 오늘날보다 더 긴 이닝을 책임지는 일이 잦았고, 완투·완봉이라는 전통 지표가 여전히 팀 에이스의 가치를 가늠하는 준거로 쓰였다. 김시진은 그 환경 속에서 선발로테이션의 앞자리를 장기간 지키며 꾸준히 규정이닝을 충족했고, 시즌 내내 컨디션의 파고를 제어해 ‘팀이 믿고 맡기는 투수’라는 신뢰를 공고히 했다. 이닝 누적은 단순히 숫자의 합이 아니며, 해당 시즌 불펜 운용의 안정성과도 직결된다. 장거리 이닝 소화는 벤치가 후반을 설계하는 옵션을 넓혀 주고, 연전·원정이 빈번한 구간에서 팀 전력의 피로도를 실질적으로 낮춘다. 이 지점에서 김시진의 누적 기록은 동시대 동료 투수의 평균치보다 높은 팀 공헌도로 환산된다.
비율 지표의 관점에서 보면, 평균자책점(ERA)은 리그 득점 환경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한다. 타고투저의 시류가 강했던 시즌과 마운드 우위의 시즌이 교차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시즌 편차를 억제하며 수년간 안정적인 레인지에 안착했다. 단순 ERA 대신 상대적 지표(리그 평균 대비 조정 개념)를 적용해도 ‘꾸준히 플러스’를 만드는 투수의 전형을 보여 준다. 피안타율·볼넷률·피장타율의 균형 또한 특징적이다. 전성기 구간에는 장타 억제력이 뛰어났고, 커리어 후반에는 볼넷을 줄이며 ‘맞더라도 크게 맞지 않는’ 경기 운영으로 전환했다. 삼진율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던 시대였지만, 필요 순간의 탈삼진 능력은 경쟁우위를 창출했고, 병살 유도·약한 타구 관리가 동반되면서 실제 실점 억제력은 표면 ERA보다 더 좋게 체감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상황 지표(클러치·득점권·이닝 분할)에 눈을 돌리면 강점이 더욱 선명해진다. 득점권에서의 피안타 억제, 7회 이후 고레버리지 상황에서의 실점 최소화는 ‘빅게임 피처’의 면모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이닝 초반에는 적극적으로 스트라이크를 선점해 투구수를 절약하고, 주자가 누적되면 낮은 코스로 구사구질을 바꾸며 타구 질을 통제했다. 사구·폭투와 같은 ‘자기 손실’이 적은 편이라 수비가 실책을 범하더라도 추가 실점으로 번지는 도미노를 비교적 잘 끊어 냈다.
포스트시즌 기록은 정규시즌 누적의 질을 검증하는 별도의 무대였다. 단판·숏시리즈 특성상 투수의 리스크 관리가 곧 시리즈의 향방을 좌우한다. 김시진은 단기전에서 구속 이상의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 주며 선발·롱릴리프를 오가기도 했다.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정면 승부로 큰 스윙을 유도하거나, 의도적으로 바깥쪽 낮은 코스로 약한 컨택을 만들어 병살 상황을 설계했다. 기록지는 모든 맥락을 담지 못하지만, 당시 언론·동료 평가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던 키워드는 ‘침착함’과 ‘꾸준함’이었다.
수상과 타이틀의 히스토리는 커리어의 봉우리를 상징한다. 특정 시즌 다승·승률·평균자책점 경쟁에서 상위권을 지키며 에이스로서의 존재감을 증명했고, 올스타·베스트나인·골든글러브급의 명예 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물론 원년기의 통계 인프라가 오늘만큼 정밀하지 않았음을 감안해야 하지만, 당시 동시대 비교(포지션·역할·리그 득점 환경)에서 그의 커리어는 분명 상위 티어에 해당한다. 요약하면 김시진의 통산 기록은 ‘긴 호흡의 누적’과 ‘안정된 비율’, ‘상황 대응 능력’이 삼각편대를 이루며 팀 승률에 실질적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야구 투구 스타일·구종 운용·경기 운영: 시대를 앞선 조합과 적응
김시진의 투구를 구성하는 핵심은 ‘기본기 위의 변주’였다. 전성기 구간의 포심 패스트볼은 타점과 회전의 품질이 좋아 타자들이 예상하는 로프트보다 반 박자 위에서 들어오는 체감이 있었다. 이 포심을 축으로 슬라이더·커브·체인지업을 얹어 구속대·움직임·궤적의 분산을 확보했고, 카운트별·타자별 맞춤형 배합으로 스윙 품질을 떨어뜨렸다. 특히 우타자 상대로는 슬라이더의 레이트 브레이크를 활용해 배럴을 빼거나 얕은 땅볼을 유도했고, 좌타자에 대해서는 체인지업으로 속도를 덮어 컨택 타이밍을 무너뜨렸다. 커브는 높은 타점에서 떨어지는 낙차형으로 루킹 삼진·카운트 재설정 용도로 의미가 컸다.
메커니즘 측면에서 그가 돋보인 대목은 ‘재현성’이다. 테이크백이 과도하게 길지 않고, 릴리스 포인트가 일정해 공이 손에서 떠나는 순간의 방향성을 안정시켰다. 하체 사용을 앞당겨 상체가 급히 쏠리지 않도록 했고, 오른발 착지 이후 골반·가슴의 회전 타이밍을 일정하게 맞춰 제구의 분산을 줄였다. 이 결과 스트라이크 초구 비율이 높아졌고, 불리한 카운트 진입을 줄여 전체 투구 효율(투구수/이닝)을 개선했다.
경기 운영의 디테일은 당시 기준으로도 현대적이다. 초반 1~2회는 빠른 템포로 타자들의 반응을 스캔하되, 2바퀴째부터는 동일 코스 반복을 자제하며 시야 변화를 강제했다. 예를 들어 같은 타자에게 첫 타석은 바깥쪽 하단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유도했다면 두 번째는 같은 터널에서 체인지업을 던져 배럴 각도를 흐트러뜨렸다. 스트라이크존이 넓게 잡히는 날에는 코너워크를 과감히 시도하여 약한 타구를 유도했고, 반대로 압축된 존에서는 포심·커브의 높낮이 조절로 스윙 결정 타이밍을 늦췄다. 이처럼 심판 존·상대 타자 세팅·자기 구위의 당일 컨디션을 종합해 ‘그날의 해답’을 빠르게 고르는 재능이 있었다.
위기관리에서는 두 가지 원칙이 도드라진다. 첫째, 1·3루 혹은 무사 1·2루에서 병살 확률을 높이는 낮은 존 공략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외야 플라이로는 주자 한 베이스를 허용할 수 있지만, 내야 땅볼은 2아웃을 창출하며 이닝 구조를 바꾼다. 둘째, 주자가 3루에 있을 때 포수와의 사인 커뮤니케이션을 단순화해 폭투·포일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결정구 구사에서 과도한 회전량 변화구 대신 존을 스치며 떨어지는 슬라이더·체인지업으로 ‘안전한 위협’을 선택하는 식이다.
커리어 후반부로 갈수록 그는 ‘속도’보다 ‘각도·타이밍’ 중심의 투수로 변모했다. 구속 저하 국면을 감추려 특정 카운트에서 포심 비중을 일시적으로 높이거나, 초구에 변화구를 박아 타자들의 어프로치를 뒤틀었다. 볼넷抑制가 성과로 이어지면서 6~7이닝을 꾸준히 가져가는 QS(퀄리티스타트) 비율이 개선되었고, 팀의 연속성 있는 불펜 운용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 적응의 과정이야말로 그를 ‘한 시대의 투수’가 아니라 ‘여러 시대를 건너는 투수’로 만든 본질이다.
야구팀 기여·포스트시즌 존재감·유산: 원년 에이스가 남긴 기준선
김시진의 팀 공헌은 박스스코어에 찍히는 승패를 넘어 ‘조직의 리듬’을 만들어 낸 데 있다. 주기적으로 긴 이닝을 책임지는 선발이 로테이션에 존재하면, 불펜은 자신의 역할과 휴식 리듬을 안정화할 수 있고, 타선은 초반부터 무리한 득점 압박에 시달리지 않는다. 특히 원년기의 촘촘하지 않은 트래킹 데이터 환경에서는 ‘체감 안정감’이 선수단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컸는데, 그는 그 심리적 버팀목의 역할을 자주 맡았다. 원정 연전·장거리 이동 직후 등 컨디션 관리가 어려운 스케줄 구간에서 ‘팀이 믿고 가는 날’을 만들어 주는 선발은 시즌 장기전의 모멘텀을 좌우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가 올려 놓은 QS·이닝 누적·실점 억제의 삼박자는 승률 이상의 의미를 띤다.
포스트시즌의 김시진은 ‘문제 해결자’로 기억된다. 시리즈 중반 라인업 재편, 선발 턴이 꼬였을 때의 긴 이닝 롱릴리프, 1승이 절실한 경기에서의 단단한 선발 등판까지, 각본이 바뀔수록 존재감은 더 커졌다. 단기전은 상대가 준비한 플랜A를 얼마나 빨리 무력화하느냐가 관건인데, 그는 타순의 반응을 보고 구종 창고를 개방하거나, 반대로 단일 콤보(포심-슬라이더)만 반복하며 타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변주했다. 적어도 ‘무너질 때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는다’는 신뢰는 시리즈 내내 벤치에 전파되었고, 이는 경기 후반의 공격·대주자·대수비 선택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동시대 비교의 관점에서 그가 세운 기준은 세 가지다. 첫째, 선발의 기준. 단순히 최고 구속·삼진 수치가 아니라, 시즌 내 전력의 합리화를 이끄는 이닝 공급 능력을 선발의 핵심 가치로 재확인했다. 둘째, 적응의 기준. 원년기의 공인구·볼판정·수비 품질 등 외생 변수가 지금보다 컸음에도, 그 안에서 재현 가능한 메커니즘과 현실적인 경기 운영으로 ‘계속 이기는 법’을 체득했다. 셋째, 문화의 기준. 투수·포수가 함께 만들어 가는 배터리 문화, 경기 전 루틴과 회복 루틴의 내재화, 후배에게 전수되는 ‘상황의 언어’가 그의 커리어를 통해 조직 안에 축적되었다.
유산을 이야기할 때 지도자·멘토로서의 족적을 빼놓기 어렵다. 은퇴 이후 그는 프로 현장에서 코치·감독·자문 등의 다양한 역할로 선수 육성 시스템의 현장성과 디테일을 보완했다. 투수 운용 철학(불펜의 역할 분담, 선발의 피치 카운트 관리, 백투백 등판 억제 등)과 데이터 해석(당일 컨디션과 장기 표본의 균형)을 접목해, ‘선수의 오늘’과 ‘팀의 시즌’을 동시에 최적화하는 접근을 강조했다. 주니어 투수들에게는 메커니즘의 반복 가능성과 부상 회피를 위한 하체 사용, 릴리스 일치의 중요성을, 시니어 투수들에게는 구속 대신 타이밍·눈높이 싸움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팬덤과 미디어에 남긴 상징성 역시 분명하다. 원년 세대의 레전드는 단지 기록의 소유자가 아니라, ‘야구가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이야기될 것인가’를 정의한 사람들이다. 김시진의 이름이 기사 제목·해설 멘트·세이브드 클립 속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될 때, 그 안에는 ‘투수란 무엇인가’에 대한 한국적 정의가 함께 담겼다. 무모하지 않되 두려워하지 않는 승부, 자신의 구위를 과대평가하지 않되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모아 찍어내는 승부 감각, 그리고 시즌 전체를 보는 시야—이 모든 것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레퍼런스다.
결국 그의 유산은 수치와 이야기, 기술과 문화의 합성물이다. 통산 기록은 시간의 검증을 통과했고, 상황 지표는 팀 승리의 실질적 기여를 입증했으며, 경기 운영과 멘탈리티는 세대가 달라져도 복제 가능한 원칙으로 남았다. ‘KBO 40인 레전드’라는 타이틀은 바로 이 총합에 대한 사회적 합의이며, 그 합의는 시즌이 바뀌어도 쉽게 퇴색하지 않을 것이다.
김시진은 원년기의 긴 이닝과 투혼, 현대적 경기 운영의 효율성을 한 몸에 담아 낸 레전드다. 오늘의 관점으로 재독해해도 그의 통산 기록은 ‘꾸준함·적응·상황 대처’의 교본이다. 당신이 기억하는 김시진의 순간을 떠올리고, 그 교훈을 다음 세대의 마운드 위 루틴으로 이어 가 보자.